공부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더니 요즘 같으면 만고의 진리다. 아스테카(아즈텍)와 잉카 등 라틴아메리카 제국의 역사를 읽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을 짧게 적어둔다.
이전부터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스테카와 잉카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편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곳 주민들과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다른 지역 문명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아스테카와 잉카 문명은 에스파냐 인이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당시에도 여전히 번성한 상태였고, 백인 정복자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것에 대해 생생한 설명을 남겼다. (벤자민 킨, 키스 헤인즈, 60쪽)
한창 번성하던 문명이 갑자기 몰락해서 더 이상 계승과 발전이 없이 일종의 박제가 되어버린 때문일까. 아니면 탐욕스러운 정복자들이 피지배인들을 철저히 대상화하고 착취하기 위해서 자세히 그 문화를 관찰하고 분석한 탓일까. 원인이야 여러가지겠지만 바다 건너 멀리서 나타난 새로운 지배자들은 머지 않아 라틴아메리카에 관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낸다.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유럽 인들은 원주민 집단들이 구세계의 여러 지역이 경험한 바 있는 문화적 발전과 같은 단계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구석기 시대의 수렵채집인, 신석기 시대의 농부, 청동기 시대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와 비슷한 복잡한 제국, 모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의 책, 43쪽)
그 중 잉카의 모습은 어땠을까. 고고학적 유물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밝혀진 잉카는 혹자들이 예견했다는 것처럼 사회주의나 복지국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이상적인 공동체나 사회구조를 유지했다면 과연 제국으로 번성할 수 있었을까. 너무 부정적일 수는 있겠으나,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불평등과 착취는 제국이 탄생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것이 바로 제국이라는 지배와 피지배 메커니즘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
잉카(잉카는 원래 군주 또는 왕족을 가리키는 말임)와 농민의 관계는 상호주의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그것은 선물과 그 선물에 대한 보답이라는 정교한 제도로 나타났다. 농민들은 잉카의 땅을 경작하고, 그의 양모와 면으로 옷감을 만들었으며, 그 외에도 그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일을 했다. 대신 잉카는 농민들이 공유지를 경작할 수 있게 해주고, 흉년에는 창고에 보관 중인 잉여 곡물을 풀어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황제의 선물 역시 농민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 '상호성'은 결국 잉카의 지배자나 귀족이 평민을 가혹하게 착취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위의 책, 104쪽)
이 대목에서 주말에 읽은 강신주의 책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통념을 깨기 위해서인지 프롤로그에서부터 노자의 '도'에 대해서 바로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통치자는 피통치자에게 노동력이든 재화든 수탈하고, 그걸 (재)분배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이 바로 국가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위대함, 아니 무서움은 이 메커니즘을 정확히 포착하여 그걸 싸늘한 눈으로 통치자의 정치에 응용하려는 데 있다. 바로 이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을 노자는 '도'라고 불렀던 것이다. (강신주, 4%)
착취의 근본적인 구조는 동서양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까지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인류역사에서 보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서 더 안타깝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존재로서 '잉카'를 종교적 세계관의 중심에 놓는 이데올로기를 선택했고, 중국에서는 노자의 '도'라는 개념으로 부당한 제도를 은폐하고 강화했다는 차이점뿐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얼마 전 읽었던 이중톈 책의 한 대목도 강신주의 주장과 연결이 되어 이제야 쉽게 수긍이 간다.
이렇게 보면 노자는 결코 진정으로 무위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다스리지 않음으로써 다스리고 애써 하지 않음으로써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경지를 꿈꿨다. 이것은 장자와는 조금 다르다. <중략> 확실히 노자는 작위가 없는 것, 즉 '무작위'를 지향했을 뿐이다. 장자야말로 '무정부'를 지향했다. (이중톈, 65쪽)
노자에 관한 이중톈의 시각은 절묘하게 배치한(번역가의 솜씨일 수도 있겠으나) 다음의 문장으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묵자, 노자, 장자 가운데에서 누가 결실을 맺었을까?
바로 노자다.
또한 그 결실은 바로 한비였다. (위의 책, 65-66쪽)
오늘은 여기까지다.
A. 벤자민 킨, 키스 헤인즈 지음, 김원중, 이성훈 옮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상), 2014, 그린비출판사
B. 강신주 지음,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2014, 오월의 봄, e-book
C. 이중톈 지음, 김택규 옮김, 이중톈 중국사 (06): 백가쟁명, 2015, 글항아리
[15070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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