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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쓰기/책

나는 살았었다: VIXI

by deli-space 2019. 3. 18.

히가시노 게이고의 중편 추리소설을 모아놓은 『그대 눈동자에 건배』 중 사파이어의 기적을 읽다가 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의 사파이어는 희귀하게도 파란 색 긴 털을 가진, 세계에서 단 한 마리뿐인 페르시아고양이를 말한다(나중에는 그렇지 않다는 반전이 등장하지만). 원래 이탈리아의 한 부호가 기르고 있었던 이 신비한 고양이의 파란 털 후손을 교배하려고 브리더(breeder)들이 시도하지만 다들 실패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여러 번의 시도로 욕심을 부리다가 열일곱 마리째 새끼 고양이가 태어나면 주인들은 모두가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 불행을 겪는다. 그런데 왜 하필 열일곱인가.

 

왜 열일곱 마리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설이 있었다. 페르시아고양이의 기원은 16세기에 이탈리아에 건너온 장모종(長毛種)의 고양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17은 불길한 숫자로 여겨진다. 17은 로마숫자로 하면 ⅩⅦ이고, 이것은 VIXI라고 그 순서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은 나는 살아 있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VIVO의 과거형으로 나는 살았었다’, 지금은 죽었다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히가시노 게이고, 2017: 239-240)

 

그런데 나는 살았었다라는 말이 정녕 불길한가. ‘나는 과거에 살았었다'는 문장은 '나는 지금은 죽었다와 의미상 같으며 논리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아주 당연하다. ‘자명한 진리에 해당한다. 참고 삼아 카뮈의 『시지프 신화』 중에서 옮긴이 김화영이 달아놓은 각주를 인용해놓는다.

 

라팔리스의 진리(Lapalissade). 프랑스의 귀족이며 군인인 자크 드 샤반 드 라팔리스(Jacques de La Palice, 1470~1525)의 비석에서 유래한 말로 자명한 진리를 뜻한다. 그가 죽은 뒤 그를 기리는 무덤에 슬프도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부러움을 샀을 텐데(Hélas s'il n'était pas mort, il ferait encore envie).’라는 비명이 새겨졌다. 후세에 이 비명의 후반부가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을 텐데(il ferait encore en vie).”로 잘못 읽힌 결과 자명한 사실을 의미하는 문장이 되었다. 그 후 다시 그 인물과 관련하여 라팔리스의 진리(vérités de La Palisse)’라고 불리는 자명한 사실들을 담은 베르나르 드 라모누아의 풍자 노래가 유행했으니 바로 죽기 십오 분 전에 그는 아직 살아 있었네(Un quart d’heure avant sa mort, il ferait encore en vie).’라는 내용의 노래다.”(알베르 카뮈, 2016: 17)

 

이렇게 뻔한 진리가 불길한 건 자신이 죽었다는 뜻보다는 문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나는 살았었다라는 문장을 누군가의 눈앞에서 말하는 존재를 상상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는 그 존재가 누군가의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예감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아무래도 존재라기보다 유령에 가깝다. 출몰하는 것. 요즘은 자꾸 그게 전통(tradition)이라는 지난한 설계 주제와 겹쳐 보이며, 바로 그런 것에 관심이 많다. (20190318)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사파이어의 기적, 『그대 눈동자에 건배』, 2017, 현대문학: 서울, p239-240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부조리의 추론, 『시지프 신화』, 2016, 민음사: 서울,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