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아름다움이 뭐예요? <중략>”
“일본 중세에 ‘노(能)’의 미학자로 제아미(世阿彌)라는 분이 있어요. 그는 아름다움을 아홉 단계로 나눴어요. 그 가운데 3등이 뭐냐면, 하얀 은그릇에 흰 눈이 소복이 담긴 상태예요(銀玩裏盛雪).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런데 3등밖에 안 돼요. 다음은 눈이 천 개의 산을 덮었는데, 하나의 봉우리만 안 덮여 있어요(雪覆千山 爲其麽高峯不白). 이것은 너무 아름답지요. 하지만 2등일 뿐이에요. 1등은 뭐겠어요. ‘신라의 한밤중에 해가 빛난다(新羅夜半日頭明)’라고 했어요. 한밤중에 해가 빛나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언어도단의 세계예요. <생략>”
“<생략> 그런데 ‘신라의 한밤중에 해가 빛난다’라는 말이 제일 멋진 거 같아요.”
“3등은 왜 예쁘겠어요. 동일성이지요. 흰 눈에 흰 그릇이나 동일성이잖아요. 2등은 차별성이에요. 모든 봉우리가 하얀데 봉우리 하나만 까맣게 드러나니 말이에요. 어떻든 3등과 2등, 동일성과 차별성은 현실에 있는 것들이에요. 그렇지만 ‘신라의 한밤중에 해가 빛난다’는 것은 현실 경계를 넘어선 거예요. 다시 말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아름다움이지요.”
이성복(2015).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시: 대담 이우성’. 『극지의 시: 2014~2015 이성복 시론』. 서울: 문학과지성사. 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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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야밤 퇴근하던 친구가 쥐똥나무 향기가 이렇게 그윽한지 여태 몰랐다며 가로등에 흐릿하게 비낀 사진과 짤막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 언제인지도 모르게 가버렸던 거야. 그렇게까지 예쁠 필요는 없는데 혼자 애쓰다가 종내 사라지는. 내겐 그저 뒤늦게 어렴풋이 아름답다고(또는 아름다웠더라고) 깨닫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앎의 순간 곁에 없으니, 현재의 부재를 통해서 존재의 기억을 보다 통렬하게 일깨우는 것. 부재로 각인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정과리의 기형도 시평에서였을까, 아무래도 거기서 비슷한 걸 읽은 듯). 이렇듯 존재와 부재가 어우러지면 바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아닌지. 나도 모르게 허허로운 마음으로 불쑥 들이민 존재의 잔향의 날카로운 끝에 어떻게 버텨야 하나. 얼마쯤 품어야 세월에 무뎌져 오롯이 내 것이 되는지, 어쩌면 아름다움의 과제. 마음 공부가 깊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이해해본다.
[1605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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