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왼손으로 쓰기/역사

[몽골]몽골의 불교1

by deli-space 2013. 7. 22.

몽골의 불교

Buddhism in Mongolia

 

출처: 아래 모든 텍스트와 그림, http://en.wikipedia.org/wiki/Mongolian_Buddhism

   

<카라코룸에 있는 몽골제국 최초의 티베트 불교사원인 에르덴조에 있는 불상>

 

<서기 18세기 몽골의 금동 사리탑과 금강경(金剛經, 반야바라밀, prajnaparamita)>

 

몽골에서 불교는 전통적으로 지배적인 종교였다. 한때 90~99%에 이르는 인구가 불교를 믿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불교를 강력하게 탄압했다. 소비에트는 수천의 승려들을 죽였으며 크리스트교 원조 단체와 함께 불교 사원을 뿌리째 제거했다.

14~15세기 대원제국(Yuan Dynasty) 황제들이 티베트 불교로 개종했으나, 제국이 붕괴하자 몽고인들은 다시 이전의 샤머니즘 신앙으로 돌아갔다. 1578년 몽골을 통합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던 추장 알탄 칸(Altan Khan, 1507~1582)이 칭기즈 칸(Chinggis)의 업적을 모방했다. 당시 전성기를 이루고 있던 거루파(Gelug, 格魯派, 라마교의 한 파(). 최고 지도자는 달라이라마. 황색 모자를 써서 황모파(黃帽派) 또는 황교(黃敎)라고도 함) 계통의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를 초대했던 것이다. 이들은 제휴 협정을 맺었다. 거루파 최고 지도자는 알탄 칸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그가 황제라는 주장을 종교적으로 승인했다. 또한 그 보답으로 알탄 칸은 불교 사원을 보호하고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몽골의 알탄 칸은 티베트의 지도자에게 달라이라마(Dalai Lama, Ocean Lama, 지혜의 바다라는 뜻)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이후 달라이라마의 계승자는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탄 칸이 죽었다. 하지만 그 다음 17세기에 황교(黃敎)가 몽골 전역으로 펴져나갔다. 또한 경쟁을 벌이던 몽골 귀족들이 티베트 불교를 통해 종교적 승인과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 탓에 부분적으로 도움을 받은 측면도 있다. 몽골 땅 전체에 걸쳐 사원(몽골어로는 datsan, 다짠)을 세웠다. 사원이 교역과 이동 경로의 연결지점이나 여름철 목초지에 자리 잡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곳에 유목민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

 

1. 티베트 불교의 성장 배경

 

<몽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툴쿠(Tulku, 活佛)인 자나바자르(Zanabazar)의 작은 조각상>

 

<검을 들고 있는 산신(山神)을 그린 불교 탱화(Thanga, 幀畵)>

 

티베트 불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치료 의식과 구마식(驅魔式)에 대승불교(Mahayana, 大乘佛敎)와 금강승(Vajrayana, 밀교의 일파)을 혼합한 것이다. 또한 고통과 윤회로부터 개인적인 해방이라는 불교 공통의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는 윤회로부터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구원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무아(無我)의 열반(Nirvana, 니르바나)에 들기를 미루고 있는 동정심 많은 부처(깨달음을 얻은 이)들의 중재를 통해서 이러한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 보살(Bodhisattvas)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는 이런 부처들은 다신론적인 측면에서의 신이 아니다. 그보다는 속세를 초월한 존재 또는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서 인간, 속세의 신, 저항하는 악귀, 모습을 바꾼 마귀, 배회하는 귀신 사이에서 등장한다. 이것은 불교가 퍼져나간 지역의 민속 신앙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탄트라 교(Tantrism)는 밀교적인 명상법을 비롯해서 신성한 성상(聖像), 어구, 동작으로 이루어진 레퍼토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런 명상법과 레퍼토리는 이윽고 실용적(초월적이라기보다)이면서도 주술적인 해석을 낳게 되었다. 불교는 망상으로 인해 가려진 실체를 깨닫고 이해하는 진보적인 단계가 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망상이 실체를 가리고 신성한 상징들을 점점 더 추상적인 말로 해석했기 때문에 명상이나 불교의 교리를 통해서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와 자각을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야크(yak, 티베트 산 들소)를 치는 유목민에게 질병의 악귀를 쫓는 직접적인 푸닥거리를 보여주는 의식이 한편으로 고승(高僧)들에게는 명상과 금욕을 행하는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대립 상황의 재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사원에서 이루어지는 불교 경전에 대한 왕성한 학술 연구와 함께 대중을 위한 다채로운 의례와 치료 의식을 더하면서 티베트 불교는 점차 혼합물이 되어갔다. 대립하던 다른 종파들과는 다르게 거루파는 사원에서의 수련과 논리적, 형식적인 논쟁을 깨달음에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서 강조했다. 환생에 관한 티베트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는 탄트라 교의 믿음과 결합된 것이다. 해탈에 이른 이전 지도자들의 환생으로 여기는 지도자를 받들면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신(化身) 또는 활불(活佛)이라 불리는 이런 지도자들은 세속적인 권력을 지녔으며 일반적인 승려 또는 라마(lamas, 티베트 이름 블라-(bla-ma)에서 비롯된) 집단을 지휘한다. 평신도들이 승려를 후원한다. 이렇게 후원을 하고 평신도는 보상을 받는다. 치유 의식, 예언, 장례 등에 관해서 사원이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이 몽골에 널리 퍼졌지만, 몽골의 불교는 이와 다르며 고유의 특성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