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상황과 오래된 생각
New clients, old ideas
“기후 변화-경제적이거나 기상학적이거나-로 인해서
정원 설계가에게 새로운 도전의 시기가 오다”
2014년 3월 7일 금요일
토마스 하블린(Thomas Hoblyn)
<작업 중인 수공업자: 참나무 가구 제작업체인 게이즈 버빌(Gaze Burvill )의 작업장에서. 사진: 토마스 하블린>
월요일
지난 몇 달 동안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끔찍했다. 그런 상황은 주로 날씨와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가 추진하는 장기간의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힐러스든 하우스(Hillersdon House, 역주: 영국 데번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저택)를 방문했다. 이 프로젝트는 벌써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힐러스든 섬(Hillersdon Island )이라고 해야 할까? 톤턴(Taunton)에서 접근하는 길은 거의 다 잠겨버렸고 주변의 도로도 끊겼다. 습한 날씨로 인해서 공사업체의 작업이 심각하게 지연되고 있다. 공사를 제때 마치지 못할 경우 재정적으로 손실을 봐야 할 판이라 걱정이 태산이다. 물론 우리 모두는 조경 공사가 이상적인 조건에서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지금이 바로 도급업자, 발주자, 설계자 사이의 관계가 긴박해지는 시점이다. 발주자는 집과 정원을 원하고, 공사업체는 정해진 기간에 일을 마치고 싶어한다. 한편 설계자인 나는 정원이 개장할 때부터 무럭무럭 자라길 바란다. 이런 삼자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절충하기 위해서 신경이 곤두선 채로 하루를 보냈다. 준공 시점까지 기상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운 좋게도 소형 비닐 하우스(polytunnel)를 구해서 대상지에 설치했다. 이제는 상황이 좋아지기 전까지 현장으로 반입해야 하는 모든 식물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화요일
서퍽(Suffolk)으로 돌아가는 길을 우회해서 참나무 가구 제작업체인 게이즈 버빌(Gaze Burvill )을 방문했다. 그 곳에서 첼시 플라워 쇼에 출품할 전시물에 대해서 조언을 했다. 이들은 ‘진짜 살아있는 정원(real garden)’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장 주변을 돌면서 아주 재미나게 둘러 볼 수 있었다. 전에는 게이즈 버빌이 ‘장인의 손길을 담은 수공예’ 스타일을 어떻게 창출하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해답을 알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그 비결은 모든 작품을 수공업자가 손수 만드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변함 없이 계속해 온 증기를 활용한 휨 가공이 진행 중이었다. 물론 현대적인 기술도 다수 사용하고 있었다. 3D 캐드 도면 대로 목재 덩어리를 섬세하게 깎는 아트 커팅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일괄 절단 작업(batch cut)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재고품을 들여놓는 여유 공간을 넓게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 작업자들이 이제 막 구내로 이동하려고 한다. 절단 작업에서 나온 참나무 목재의 자투리는 회사 건물의 난방 재료로 쓴다.
수요일
기상학적인 기후만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경제적인 기후 또한 관련이 깊다. 작년에 장기 프로젝트 몇 가지가 종료되었으나 새로운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지난 해에는 직원 중 두 명이 회사를 떠났지만 대체할 신입 인력을 채용하지 않았다. 1월 한달 동안은 내 전화가 고장이 났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이게 과연 놀랄 만한 일인가? 오로지 날씨 탓에 사람들이 정원 만드는 계획을 미루는 게 아니다. 사치스럽게 새 정원을 꾸미는 일은 재정적인 우선 순위 목록에서 아래 쪽으로 밀려나 버렸다. 경제가 나아진다는 얘기가 들려오지만 피부에 와 닿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릴 듯하다.
이런 와중에 정말 특별한 사건이 벌어졌다. 오늘 두 건의 문의를 받았다. 둘 다 호텔에 관한 일이었다. 하나는 콘월(Cornwall)에 있는 호텔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우리가 사는 지역에 위치한 것이었다. 오후에 우리 지역의 호텔을 방문할 수 있었다. 호텔 의뢰인은 몇 년 전 내가 개인 정원을 작업해 준 사람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호텔과 주변 지역을 4성급 수준에 걸맞게 복원하는 일이었다.
오래된 대형 주목 토피어리가 테라스 측면을 에워싸고, 진입로 주변에는 장엄한 모습의 석회 난간이 둘러져 있었다. 이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던 것은 울타리가 있는 정원(크링클-크랭클 담장(crinkle-crankle walls, 역주: 평면상으로 물결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늘어선 담장)이었다. 호텔 소유주는 여기에 주방을 마련해서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또한 런던의 최상급 요리사를 이곳으로 스카우트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기분이 좋다. 물론 설계비와 관련된 사소한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다른 하나의 프로젝트는 다음 주에 방문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서퍽은 한때 매우 건조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의 목초지에도 물이 넘쳐 흐른다. 사진: 토마스 하블린>
목요일
누군가가 우리 일을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런던에 있는 식당 정원의 허가를 받았다. 가디언의 저 유명한 알리스 파울러(Alys Fowler, 역주: 영국의 정원 관련 유명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이다. 크리스마스 전에 알리스와 나는 의뢰인에게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간 완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제 와서야 의뢰인이 새로운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예산을 세우고 설계비에 관해 입씨름을 벌였다. 결국 일을 시작했다. 빡빡한 준공 일정에 맞추어 재료를 주문하기 위해서 도면을 급하게 그리느라 엄청난 소동이 벌어졌다. 이제는 일손이 딸려서 죽을 지경이다. 프리랜서에게 연락을 넣기 시작했다.
금요일
우리 호텔 프로젝트에 참여할 측량 기술자를 만났다. 모든 프로젝트에는 세밀한 현장 조사가 중요하다. 레벨, 기존 건축물, 교목, 관목 등 모든 사항을 도면에 기록해야 한다. 정원의 주요 공간에 대해서는 0.5미터 간격으로, 다른 곳은 1미터 간격으로 측량을 부탁했다. 또한 3차원 입체 측량(3d loci)을 요구했다. 그래야 지형을 모델링한 후 스케치업이나 벡터웍스 프로그램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큐 가든에서 지냈던 실습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지 실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현장 조사 과목의 선생은 체인 측량기(형태가 고정된 슬링키(slinky)처럼 생긴 금속 띠이며, 약 20미터까지 잴 수 있음)를 이용한 조사 방법을 가르쳤다. 이렇게 흩어지지 않게 결합된 체인 측량기를 던진다. 그러면 측량기가 직선을 이루면서 쭉 펴지고, 링크(links)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삼각법으로 사물을 측량할 수 있다. 100개의 링크는 4로드(rods) 또는 1체인(chain)에 해당한다. 10체인은 1펄롱(furlong , 약 201미터)이며, 80체인이 1마일(약 1,609미터)이다. 요즘 사람들이 미터법만을 너무 고집하는 게 아닐까?
주말
서퍽은 옛날부터 가장 건조한 지역에 속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최근에 변한 날씨의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 정원은 매우 낮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뒤쪽에는 늪처럼 생긴 습지가 있다. 오래 된 배수로를 정기적으로 준설하지 않았더니 쓸려 온 토사로 인해서 이내 막혀버렸다. 결국 매년 물이 역류한다는 뜻인데, 올해는 그 정도가 만만치 않았다. 작은 숲이며 목초지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물에 잠긴 교목의 가지가 수면에서 하늘로 뻗어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꽤 아름답지만 야생동물들이 걱정이다. 다행히도 우리 땅에는 조금 높은 곳이 있는데, 양들은 여기서 안전하게 풀을 뜯을 것이다. 양들이 새끼를 낳기 전에 얼른 날씨가 좋아지길 바랄 뿐이다. 셰틀랜드(Shetland) 품종의 양은 강인해서 그런대로 잘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헤엄을 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토마스 하블린(http://thomashoblyn.com)은 조경 및 정원 설계가이다. 평생 가꿔 온 정원들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일련의 기록 중에서 가장 최근의 글이다.
**위 모든 글과 그림은 영국 <가디언>지의 해당 기사를 그대로 인용, 번역한 것이며, 상세한 웹 사이트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www.theguardian.com/lifeandstyle/gardening-blog/2014/mar/07/diary-garden-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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