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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쓰기/역사

[고대인도]마하발리푸람

by deli-space 2013. 7. 9.

마하발리푸람

Mahabalipuram

 

모든 텍스트와 그림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ahabalipuram

 

위도와 경도: 북위 12°38(12.63°), 동경 80°10(80.17°)

위치: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칸체푸람 디스트릭트

해발고도: 12m(39피트)

인구: 12,049(2001년 기준)

공식 언어: 타밀어

 

<마하발리푸람에 있는 해안 사원의 전경>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은 마말라푸람(Mamallapuram, 타밀어로는 மாமல்லபுரம)이라고도 부르는데,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Tamil Nadu) 칸체푸람 디스트릭트(Kancheepuram district)에 위치한 마을이다. 타밀나두주의 주도(州都)인 첸나이시(Chennai)에서 약 60Km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마하발리푸람은 고대의 역사 도시이며, 에리트레아 항해지(航海誌)를 썼던 시대(서기 1세기)나 프톨레마이오스가 살던 시절(서기 140)에는 북적거리는 항구였다. 동남아시아 나라들로 향하는 고대 인도의 무역상들은 마하발리푸람의 항구에서부터 바닷길에 나섰다.

 

7세기 무렵 마하발리푸람은 인도 남부 팔라바 왕조(dynasty of the Pallavas)의 항구 도시였다. 대체로 7세기부터 9세기에 이르는 동안 역사적 기념물들을 다양하게 건설했다. 마하발리푸람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호지역(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록되었다. 이곳의 평균 해발고도는 12m(39피트)이다. 오늘날의 마하발리푸람은 1827년 영국령 인도제국 시절에 세웠다.

 

1. 역사

서기(西紀)가 시작되던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석(巨石)의 매장 묘와 묘지를 둘러싼 원형 돌무더기(cairn circles), 항아리 등이 마하발리푸람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상감시대(Sangam age, 기원전 3세기~서기 4세기)의 시()인 페룸파나루파타이(Perumpāṇāṟṟuppaṭai)는 톤다이 나두(Tondai Nadu) 니르페야루(Nirppeyyaru) 항구의 칸치푸람(Kanchipuram)에 존재했던 왕 톤다이만 일람 티라이야(Thondaiman Ilam Thiraiyar)의 통치와 관련이 있다. 학자들은 이 지역을 지금의 마하발리푸람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기 4세기경 테오도시우스 1(로마의 황제, 재위 서기 379~395) 시절의 로마 동전과 중국 동전이 마하발리푸람에서 발견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서 마하발리푸람이 고대 후기 세계 무역의 활동적인 허브 역할을 한 항구였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팔라바 왕조의 왕들은 서기 3세기부터 9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울인 칸치푸람에 머물면서 마하발리푸람을 통치했다. 또한 이곳을 스리랑카나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무역상이나 외교 사절단이 출발하는 항구로 활용했다.

 

힌두교 시인 티루만가이 알바르(Thirumangai Alvar)가 쓴 8세기의 글에서는 마하발리푸람을 카달 말라이(Kadal Mallai)로 적고 있다. ‘이곳에 정박한 배들에는 보물이 가득하여 선체(船體)의 나무가 마치 부러질 듯 휘어졌다. 배에는 코가 긴 코끼리들이 실려 있고 아홉 가지 보물이 더미로 쌓여 있다.’ 마하발리푸람은 마말라파타나(Mamallapattana), 마말라푸람(Mamallapuram) 등 몇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뱃사람들에게 알려진 마하발리푸람이라는 이름은 가장 후대로 본다면 마르코 폴로 시대 이후의 것으로 생각된다. 해변에 서 있던 마하발리푸람의 탑들을 암시하는 일곱 개의 탑(Seven Pagodas)’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인 해안 사원(Shore Temple)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옛 인도의 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를 기록한 마하발리푸람의 사원들은 대개 나라시마바르만(Narasimhavarman)과 그의 계승자인 라자시마바르만(Rajasimhavarman)의 통치기에 세웠다. 이 사원들을 통해서 바위에 새긴 건축물로부터 구조적인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대략 서기 7세기 팔라바 왕조의 나라시마바르만 1세가 마하발리푸람을 발전시켰다. 장방형의 예비 공간인 만다파(mandapa)와 마차 모양으로 생긴 힌두교 성소(聖所)인 라타(rathas)는 화강암을 파내서 만들었다. 한편 반세기 뒤에 세운 저 유명한 해안 사원은 돌을 갈아서 세웠다. 마하발리푸람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외부의 문화적 영향을 잘 흡수해서 널리 전파했기 때문이다. 해안 사원에는 화강석 위에 새긴 다수의 얕은 부조들이 있는데, 그 중 큰 것은 길이 30m(100피트), 높이 13.5m(45피트)에 달한다.

 

팔라바 왕조 건축의 첫 단계에서 생긴 라타들 중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불교 사찰 또는 절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마당 여기저기에 여러 개의 작은 집들을 배치하고 성소(chaitya halls)를 세웠다. 미술사가인 퍼시 브라운(Percy Brown)은 팔라바 왕조 시대 만다파의 기원을 찾고 있는데, 실제 유사한 방식으로 바위를 파내서 지은 아잔타 석굴(Ajanta Caves)이나 엘로라 석굴(Ellora Caves)을 그 뿌리로 추정하고 있다. 서기 642년 차루카(Chalukyan)의 왕 풀라케신 2(Pulakesin II)와 싸운 나라시마바르만의 승리를 언급하면서, 브라운은 팔라바의 왕 나라시마바르만이 조각가와 장인을 전리품으로 삼아 칸치(Kanchi)와 마하발리푸람 지역으로 다시 데려왔을 수도 있다고 한다.

여러 사원들에서 서로 다른 신을 모셨다는 사실은 건축물을 지을 당시 종파주의(sectarianism)가 만연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절벽에 있는 부조에는 시바 신(Shiva)의 모습을 새겼고, 사원에는 비슈누 신(Vishnu)을 모셨다. 상감시대의 3대 신(브라마, 시바, 비슈누)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인드라(Indra)나 소마(Soma) 같은 베다 시대(Vedic, 기원전 1500~기원전 600) 신들의 역할은 약화되고 있다.

 

2. 랜드마크

 

<파노라믹 뷰로 본 조각>

 

기념물들은 대체로 암석을 파내서 지었으며 하나의 바위로 만들었다. 또한 드라비다 건축(Dravidian architecture)의 초기 단계를 형성한다. 이들 건축물에서는 불교적인 요소의 디자인이 현저하게 드러난다. 이 기념물들은 동굴 사원이며 하나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성소인 라타이다. 여기에 부조를 새겨 넣어 조각과도 같은 사원을 세웠다. 기둥은 드라비다 양식이다. 또한 조각품은 팔라바 예술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조각품들은 인도 벵골 만(Bay of Bengal) 근처 절벽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이 공간이 젊은 조각가들의 학교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미처 마무리가 덜 된 여러 조각들은 서로 다른 양식의 건축물들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 아마도 선생들이 조각을 활용해서 실제로 보여주면 어린 학생들이 이를 따라 실습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마하발리푸람의 판차 파타(Pancha Ratha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각각의 라타가 서로 다른 양식으로 조각되어 있다. 다섯 가지의 라타가 그 자리에 있는 단 하나의 화강암에 모두 새겨져 있다. 카주라호(Khajuraho)를 발굴하면서, 석공 겸 조각가인 알렉스 에반스(Alex Evans)는 화강암보다 부드러운 사암으로 석상(石像)을 다시 새겨 보았다. 1.2m(4피트) 이하로 조각하는 데만도 60일이나 걸렸다. 마하발리푸람의 조각을 새기는 일에는 고도로 숙련된 조각가 수백 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마하발리푸람에 있는 주요한 기념물들은 다음과 같다.

 

1. 티루카달말라이(Thirukadalmallai)

비슈누 신을 모시는 사원. 조각상들을 바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팔라바 왕이 지었다. 이 사원을 세운 뒤에는 남아 있는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었고 해풍에도 부식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2. 갠지즈강(Ganges)의 하강 또는 아르주나의 고행(Arjuna's Penance)

야외에 새긴 거대한 부조 작품

 

3. 바라하 동굴 사원

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바위를 파내서 소규모로 지은 사원

 

4. 해안 사원

바다 멀리 서쪽 방향에서 들어오는 항구 입구로부터 벵골 만 연안을 따라서 지은 구조물 형식의 사원. 이곳에서는 최근 발굴에 따라 새로운 구조물이 발견되었다.

 

5. 판차 라타 또는 다섯 개의 성소

피라밋 모양을 띤 다섯 개의 구조물. 판다바의 왕자들(아르주나, 비마, 유디시트라, 나쿨라, 사하데바)과 이들의 아내인 드라우파디(Draupadi)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 라타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규모가 상당히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바위에 이들 각각을 조각해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6. 등대

1894년에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