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줄어만 가는 아버지의 텃밭
My Dad's ever shrinking veg patch
“집에서 가꾼 과일과 야채는 캐롤린 맥기번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떠올리는 아주 중요한 생활의 일부였다. 이제 부모님은 텃밭의 규모를 줄이고 있다. 캐롤린에게는 이렇게 텃밭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2014년 4월 26일
캐롤린 맥기번(Caroline McGivern)
<1977년 부모님 정원에 있는 깍지콩으로 덮인 벽 앞에서 찍은 캐롤린의 사진>
“나를 만나기 전, 네 아빠는 야채가 뭔지도 몰랐단다.” 엄마는 이렇게 자주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맨체스터의 드라이든 스트리트(Dryden Street)에서 자랐다. 다닥다닥 열을 지어 붙어 서있던 당시 테라스 하우스들은 그 이후로 계속 철거되었다. 엄마는 구스트리(Goostrey)라고 불리는 체셔(Cheshire) 지방의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성장했다. 열두 남매 중 하나였다. 남매 중 마지막 아이가 집을 떠날 때까지 아래 위 층에 방과 테라스가 각각 두 개씩 있는 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 집은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나로 말하자면 야채 텃밭에 둘러싸인 채로 자랐다. 우리 집 텃밭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꾸 넓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시점엔가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양의 채소를 공급할 수 있는지 깨달으셨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자급자족의 원칙을 철저하게 받아들이셨다. 천만다행으로 자급자족 원칙은 과일과 야채에만 국한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 집의 모든 식량 수요에 완벽하게 대응해보려고 노력하셨다. 이 말은 곧 때가 되면 아버지가 슬그머니 나가서 양의 사체나 돼지 머리 반 토막을 구해 가지고 왔다는 뜻이 된다. 우리 집에서 먹는 고기는 대개 농장에 바로 주문한 것이었다. 도살된 채로 마분지 상자에 담겨서 왔으며, 우리의 필요에 따라 꼬리표를 붙였다. 친구나 친척이 우리 집을 방문할 때에도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꽃양배추(cauli)를 구하려고 떠난 낚시 여행의 성과물은 약 1Kg의 토마토와 가방 그득히 담은 깍지콩(runner beans)이었다. 상이라도 받을 법했던 풍성한 국화가 담긴 꽃병은 집에서 만든 자두 잼 몇 병과 교환했다. 교구 목사의 정원에서 슬쩍 따온 인스티티아 자두(damsons)는 브랜디에 재운 과일 케이크와 맞바꿨다.
<대희년인 1977년 당시 캐롤린의 아버지인 프랭크와 그가 가꾼 꽃양배추>
완두콩 꼬투리를 까고 상추에서 민달팽이(slugs)를 털어내느라 부모님의 정원에서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민달팽이가 꿈틀대는 걸 보면 정말 속이 상한다.
내 인생에서 일곱 번째 맞는 일이 생겼다. 부모님이 새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이제는 자그마한 정원이 딸린 집이다. 두 분이 돌아가셔서 이들이 가꾼 결실을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때가 언제 닥칠지 알 도리는 없다. 어쨌든 부모님 댁에 가면 일어나자마자 맨 먼저 홍차를 마시고 나서 텃밭을 확인한다. 그런 후에 온실로 발걸음을 옮겨서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한아름 가득히 자란 토마토와 바질(basil)의 향기가 순식간에 내 온몸을 휘감는다. 반들거리는 피망(peppers)들을 찾아내고는 경탄을 금치 못한다. 게다가 오이 덩굴 단 하나가 5m 너비의 온실을 온통 뒤덮고 있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덩굴에는 45cm 길이로 매끈하게 잘 자란 오이들이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엄청나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절대 농담이 아니다. 작년에는 이 야채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늘 먹던 샌드위치 말고 다른 처리법을 찾기 위해서 요리 책을 대거 끄집어내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버터를 조금 넣고 피망과 오이를 볶은 다음, 얇게 저민 약간의 비트루트(beetroot, 역주: 검붉은 뿌리를 채소로 먹음)와 막 따온 토마토를 곁들여서 따뜻한 점심 전채 요리로 내놓았다. 요리에 대한 안목이 높은 손님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찬사를 보냈다.
<대회에 출품한 양파를 자랑스레 들어 보이는 아버지 프랭크>
이번 주말에는 차를 몰고 북쪽의 부모님 댁으로 향할 것이다. 정원의 물건을 모두 챙기고, 올해부터 더는 즐길 수 없게 된 그 정원의 따뜻한 기억들을 마지막으로 눈여겨보아둘 참이다. 지난 6년 동안 아버지가 집의 경계 울타리를 따라 꼼꼼하게 가꾸신 지주로 받친 사과나무, 식구들의 생일이나 어머니의 날에 사온 식물들, 어머니가 의자나 다람쥐 모양으로 가꾸느라 애를 쓰셨던 회양목. 이제 이 모두를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식물을 옮길 때마다 내가 늘 불평을 했다면서 어머니는 이번에도 똑같다고 하신다. 선뜻 전화를 받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우리 집을 팔려고 찾아오는 부동산 중개인이나 집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쉬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2년 전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텃밭 가꾸는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얘기였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일이라며 이유를 덧붙이셨다. 갑자기 대화는 중단되었고 아버지는 전화를 그냥 그렇게 끊었다. 이번에도 아직은 우리가 슬퍼서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아니다. 가장자리 화단을 돌보는 대신 식물을 담은 바구니를 매다는 방법을 어머니가 곰곰 생각할 시기가 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캐롤린은 <옵서버>지의 예술 부(副)국장이며, ‘그녀가 말하길(She Said)’이라는 <옵서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위 모든 글과 그림은 영국 <가디언>지의 해당 기사를 그대로 번역, 인용한 것이며, 웹 주소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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