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이다.
지난 번 정원에 관한 글을 올린 뒤로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갔다.
2.
BTL 협의차 충주에 갔다가 일을 마치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있는 마트 서점에 들렀다. 사실 성남-충주 버스 간격이 두 시간이나 되는지라 오늘 아침 버스에 오르면서부터 어디선가 읽을거리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들르는 곳마다 책 파는 곳이 마땅히 보이질 않았다. 인터넷 서점이 이미 대세인 탓일까. 심지어 협의를 하러간 모대학교 서점에는 토익 또는 전공서적 예닐곱 종류만 덜렁 서가에 꽂혀 있었다. 당혹스러울 수밖에... 커피 한 잔 들고 불쑥 들어간 나를 보고 서점 사장님이 어느 학과에서 왔냐고 묻길래 책 좀 둘러본다고 하니까 책이 별로 없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무어라 인사를 건네고 나오는 것도 마땅치 않아서 그냥 어색하게 문을 나서는데 입안에 쓴 침이 고인다. 오프라인 서점의 몰락이라... 마음이 씁쓸했다.
3.
표를 끊고 나니 버스 출발이 시간 반이나 남았다. 터미널과 연결된 2층의 대형 마트가 있길래 혹시나 해서 바로 올라갔지만 그 곳의 서점 또한 사실 볼품이 없으리만치 규모가 작았다. 앞뒤로 붙은 서가가 불과 세 개 정도... 게다가 서가에는 아동용 도서가 대다수고, 그 앞에 눕혀서 쌓아올린 책 십수 가지가 어른들이 읽을 만한 신간이었다. 어쨌든 이런 곳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힐링 관련 서적이나 협상에 굳이 이겨보겠다는 심리 서적 등등 몇 권을 뒤적거리다가, 무심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집어들게 되었다. 원래 일본 소설은 읽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로 이미 무너진 바 있었는데, 이 소설 표지 앞뒤 글과 한 두 페이지를 읽다보니 꽤 맘에 들었다. 바로 구입하고 저녁을 간단히 해치운 후 버스 시간을 기다리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번역 솜씨가 만만치 않다.
4.
예를 들어 초반부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p.10)"수명이 다 된거야." 쇼타가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주행거리 좀 봐라. 십만 킬로가 넘잖아. 사람 늙는 거 하고 똑같아. 숨이 깔딱깔딱하던 참에 여기까지 달리고는 꼴깍 사망하신 거지. 그러니까 훔치려면 새 차를 훔치라고 내가 말했지?"
'또랑또랑하게', '깔딱깔딱', '꼴깍'이라는 의태어나 의성어가 유난히 돋보인다. 게다가 '내가 ---라고 말했지?'가 아니라 '----라고 내가 말했지?'라고 옮긴 것도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자연스러운 우리 말을 닮아 있다. 일본어에는 아예 문외한인지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원문을 추정하기 힘들 정도로 살아있는 번역 솜씨가 아닐까. 앞 표지를 들춰보니.... 하, 알겠다. 옮긴이 양윤옥! 프로필을 보니 '1Q84'의 번역가다. 다시 한 번 나의 선택에 안심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약간은 어리숙하고 어떻게 보면 귀여운 구석마저 있는 젊은 세 도둑들.... 80페이지까지만 보자면, 생각은 짧아서 늘 구박을 당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 '고헤이', 순박하지만 때로는 당차면서도 주장이 또렷한 '쇼타', 리더격이면서 다소 냉소적이지만 결국 마음 약한 모습은 감추지 못하는 '아쓰야'.... '나미야 잡화점'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이야기에 틈틈히 빠져봐야겠다. 어쩌다 오랜만에 잡는 책이 그 다음과 다음 책으로 줄줄이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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