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으로 쓰기/정원과 공원

[텔레그래프]영국인이 본 한국의 정원

deli-space 2013. 9. 3. 19:24

한국 정원: 동양의 잠자는 거인이 깨어나다

Korean gardens: a sleeping giant of the East awakes

 

*다음의 모든 글과 그림은 영국 <텔레그래프(Telegraph)>지에 실린 기사를 번역, 인용한 것이며, 원문의 웹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www.telegraph.co.uk/gardening/gardenstovisit/10271978/Korean-gardens-a-sleeping-giant-of-the-East-awakes.html

 

영국의 정원박람회에서 힌트를 얻은 엑스포를 돌아보고 한국 정원을 재평가하다.

  기사 작성: 2013829

팀 리처드슨(Tim Richardson)

 

<꽃이 만발한 정원: 창덕궁에는 ‘비원(secret garden)’이 있다. 사진: 팀 리처드슨, 알라미(Alamy)>

 

정원 분야에서 한국은 잠자는 거인인가? 서양 학자나 해설가들은 마땅히 칭송을 받을 만한 한국 정원과 경관 설계의 역사에 대해서 거의 함구해왔다. 기껏해야 한국 작가들이 연구한 내용 정도가 부분적으로만 전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주목을 받아 왔던 이웃 일본이나 중국의 전통 못지않게 한국의 정원 문화는 화려하고 탁월하며 아주 다양하다. 어쨌든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과 비슷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왕조, 승려, 관료, 신하, 스승, 군인, 시인, 학자 ...... 이들 모두가 올곧은 삶(good life)’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서 정원을 가꾸었다. 비록 서양에서 간과하기는 했지만 한국에는 흥미로운 역사 정원, 고대 사원, 극적인 모습의 산악 경관이 가득하다. 그러다보니 한국은 서양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목적지가 될 법하다. 특히 한국은 경제적으로 번영을 거듭하고 있어서 우리의 의식 속에 더욱 크게 각인될 것이다. 마치 일본이 19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수 년 동안 한국을 방문하고 싶었다. 결국 올해 5월에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한반도의 남쪽 끝에 해당하는 순천만(Suncheon Bay)에서 국제 정원 박람회(international garden expo)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원이 일본 정원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서울에 도착하면서 맨 먼저 문득 깨달은 사실은 한국에서는 나무 심기가 국가적인 강박관념에 가깝다는 것이었으며 이내 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밀집한 서울의 오피스 블록과 아파트 건물들은 마치 한국을 대표하는 산림 경관의 축소판을 뽐내는 듯 보였다. 가로변에 자리 잡은 값비싼 대지에는 숲 경관을 만들어 놓았다. 커다란 교목 아래에는 이끼류, 양치식물, 화관목(花冠木) 등을 심었다.

 

<산악 경관을 반영한 찰스 젱스의 순천만 출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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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식재로 조성한 블록들은 영국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게 보였다. 게다가 각 식재 블록의 실질적인 성격과 차이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쓸 만한 땅이라면 어디에나 교목, 관목을 장식적으로 식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구름 모양으로 가지치기한 나무들이 입구 주변과 상부를 뒤덮고 지하 주차장까지 이어졌다. 중앙 분리대에는 한국 자생종인 미선나무(white forsythia)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경계 지역에는 울타리를 세우지 않았으며, 이런 공간을 마치 수목을 식재하는 녹지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도 정원을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각처럼 아름다운 소나무가 담장 위에 늘어서 있고, 계단이나 창문 아래 선반에는 꽃이 가득 들어찬 화분들이 자리를 잡았다.

 

예상치 못했던 것도 있다. 당시 서울은 자두나무와 벚나무 꽃이 활짝 피는 시기였다. 한국의 봄은 영국처럼 세계에서 가장 뒤늦게 찾아온다. 서울의 식물원에 가보니 가파른 사면에 심은 교목 사이로 화창하게 핀 꽃들이 노래를 부른다. 새벽빛이 가실 무렵 바라보면 두 눈이 황홀할 지경이다. 도시 공원에는 하루 종일 사람들이 북적댄다. 한국 사람들은 휴일에 떼를 지어 산으로 몰려가서 트레킹을 즐긴다. 이런 취향이 너무나도 널리 퍼진 탓에 스무 곳의 국립공원과 스물 두 곳의 도립공원에서는 등산로가 훼손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인근의 북한산 국립공원은 매년 평균 5백만 명이 방문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제곱미터 당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이 바로 북한산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나무와 산에 대한 관심은 애니미즘, 샤머니즘, 풍수, 산이나 숲의 신에 대한 선사시대의 한국 전통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틀어 선도(仙道)라고 부른다. 이런 전통이 자연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에 일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각 지방마다 마을 숲(village grove)’을 가꾸는 전통이 있었다. 마을 어귀에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신성한 숲을 만드는 것이다. 훗날 이런 애니미즘적인 신앙이 불교의 가르침에 통합되었다. 3천여 개소에 달하는 한국의 사찰에는 거의 대부분 산신각(山神閣)이나 산신과 관련된 불화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서 정원을 만드는 가장 오래된 전통은 소박한 정자를 짓고 꾸밈이 없는 자연 속을 거니는 것이다. 가능한 한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드러낸다.

 

<요강나물(Clematis fusca var. coreana, 미나리아재비과)>

 

따라서 한국의 정원 및 경관 설계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서 어떻게 더 자연스러운가에 주목해볼 만하다. 이들 세 나라의 전통에 따르면 이상화된 경관을 축소시켜서 정원의 배경으로 조성한다는 관념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는 때로 산을 닮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정원에서는 실제 경관 속을 거닐면서 느끼는 감흥을 더 중요시한다.

 

이러한 전통을 실제로 반영한 사례는 한국의 옛 정원 중 가장 큰 규모인 서울의 창덕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창덕궁은 서울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궁궐이었는데 왕족들이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공간이었다. 창덕궁을 선호하던 이유는 그 곳의 뒤뜰’, 즉 좀 더 고색창연한 이름으로 부른다면 비원(secret garden)’ 때문이었다. 비원은 78에이커(316,000제곱미터 또는 약 96,000) 면적의 왕실 소유 숲인데, 여기저기에 개울이 흐르고 정형적인 연못과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시설 중 열 서너 가지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당초 창덕궁은 1406년에 지었다. 하지만 화재와 일본군의 침탈을 겪고 나서 다시 세웠다. 숲으로 조성한 이 정원에서 가파른 경사로와 우아하게 구불거리는 산책길을 걷다보면 이 곳의 규모가 실제 공간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때로는 마치 야생의 자연 속을 걷는 듯했다. 숲의 나무를 감상하기 위해서 정자를 여러 곳에 배치했다. 한편 다른 정자에서는 섬이 있는 연못을 굽어볼 수 있다.

 

비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공적인 업무를 보는 궁궐 구역이 있다. 여기에도 중요한 정원 요소가 있는데, 왕비의 처소 뒤편에 거대한 규모의 길쭉한 화강석으로 된 단()을 세 방향으로 쌓고 꽃이 피는 관목을 심었다. 또한 궁궐의 방이나 마루(balconies)에서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식재를 배치하였다.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숲의 중요성은 조선(Joseon, 역주: 이후 문맥을 보면 왕릉을 잘못 표기한 듯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은 서울의 교외에 위치한 왕의 무덤이다. 사람들이 가장 좋은 옷을 빼입고 찾아가는 경외의 대상이다. 또한 연애의 발전 단계에 있는 커플들이 선호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그 곳에서 몹시 초조해 보이는 한 젊은이가 프러포즈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뒤춤에 넣은 휴대용 술병을 꺼내서 그 불쌍한 친구에게 술 한 모금 권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기념비적인 능들은 시작 부분부터 잔디를 심은 구역인데, 모두가 빽빽한 숲 속에 감춰져 있다. 이 밖에도 볼 만한 한국 정원은 선암사나 송광사 같은 사찰에도 있다. 이 절들은 순천만에서 열리는 엑스포 장소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또한 한국 남동부의 부산으로부터 북쪽에 위치한 경주도 들러볼 만하다. 경주는 일본으로 따지자면 교토(Kyoto)에 해당하는 도시이다. 여러 절과 정원을 볼 수 있는데, 궁궐과 저 유명한 안압지(Anapji pond) 등이 있다.

 

한국은 아주 극단적인 기후를 가진 나라이다. 혹독하게 죽 이어지는 겨울이 있는가 하면 한 달 동안이나 비가 내리는(6월 하순부터 7월까지) 뜨겁고 습한 여름도 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장소를 방문하는 데에는 봄철이 가장 적합한 시기이다. 태풍이 남해안을 덮치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웃 나라인 일본과는 다르게 지진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자생 초화류는 매우 다양하다. 크러그 팜 양묘장(Crûg Farm Nursery, 웹 사이트는 http://www.crug-farm.co.uk)의 수(Sue)와 블레딘(Bleddyn)이 식물 찾기 여행을 통해서 선별한 몇 가지 종들이 있어서 영국의 식물 애호가들이 눈독을 들일 수도 있겠다. 최근에 이들이 한국의 애호 식물들을 사들였다. 덩굴 식물인 등칡(Aristolochia manshuriensis, 커다란 꽃과 굉장히 아름다운 노란 잎을 지녔음), 새빨간 단풍잎을 달고 있는 중국단풍(Acer buergerianum), 특이하게 생긴 갈색 꽃이 피는 요강나물(Clematis fusca var. coreana), 아주 일찍 꽃이 피는 한라산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m var. taquetii), 눈이 번쩍 뜨이는 자주색 꽃을 피우는 처녀치마(Heloniopsis koreana) 등이 있다. 우산형 꽃차례가 유행이라면(올해는 첼시 플라워 쇼가 아니라 첼시 우산형 플라워(cow parsley)’ 쇼가 아니었던가?), 식물 전문가들이 크러그 팜의 한국 자생종 우산형 꽃들을 탐낼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종류로는 처녀바디(Angelica cartilaginomarginata)나 왜우산풀(Pleurospermum camtschaticum) 등이 있다.

 

방문 시기가 우연하게도 북한에서 촉발한 최근의 위기 상황과 겹쳤다. 세계의 한쪽에서 벌어질 개전이 임박한 열핵 전쟁(thermonuclear war)의 위협에 대해서 호들갑을 떠는 헤드라인들이 계속 보도되었다. 나는 되레 비무장지대(demilitarised zone, the DMZ)’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떠벌리고 다녔다. 비무장지대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군사 분계선 양쪽으로 설정한 4마일(6.5킬로미터, 역주: 4‘킬로미터의 폭을 마일로 잘못 이해한 듯함) 폭의 무인지대(無人地帶)를 일컫는 말이다. 이 비무장지대는 한국 땅 을 가로로 나누고 있다. 인간들이 이 곳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고 지뢰밭이나 불발탄 탓에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초적인 자연이 되살아나는 보전지역이 되었다. 비무장지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들이 서식한다. 물론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야생동물인데, 염소처럼 생긴 기묘한 모습의 산양이 그 예이다. 퍼붓는 빗줄기와 팽팽하게 긴장된 정치 상황 때문에 비무장지대 방문은 대강 둘러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해골 밑에 대퇴부 뼈를 대각선으로 배치한 지뢰밭 표지가 달린 철책선 너머로 보이는 비무장지대의 자연이 인상 깊게 느껴졌다. 그 곳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시 초소들에서 내려다보면서 감시하는 땅이었다. 북한은 침략 계획의 일환으로 비무장지대 아래로 네 개의 땅굴(이 중 하나는 방문이 가능하다. 밀실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다.)을 팠는데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비무장지대를 자연 보전지역으로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실은 접경지역을 정상화하고 중립화하려는 한국 정부 정책의 일부라는 사실이었다.

 

순천만 정원 엑스포는 하루에 3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 모으는 대형 이벤트이다. 하지만 서양인 방문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영국의 정원 설계가인 앤디 스터전( Andy Sturgeon, 웹 사이트는 www.andysturgeon.com)이 국제 구역에 모더니즘풍의 쇼 가든(show garden)을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찰스 젱스와 릴리 젱스 부부(Charles and Lily Jencks)가 이 박람회의 하이라이트를 조성했다. 일종의 거대한 대지 형상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경관을 축소화해서 시각적으로 반영하는 동양 전통에 감흥을 받아서 설계했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을 보면 산을 숭배하는 한국의 전통을 실감할 수 있다. 찰스가 나에게 말했다. “한국인들은 경관에 대해서 여전히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이런 감정을 찾아볼 수 없다. 살아 숨 쉬는 전통인 셈이다. 한국인들은 밖으로 나가서 걷거나 돌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마음속으로는 우주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animists)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자라나는 모든 것과 직관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거대한 대지 형상은 상징적으로 주변의 지형을 옮겨서 지도처럼 축소한 것이다. 젱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소용돌이 모양의 마운딩 7개와 순천을 대표하는 중앙의 호수를 만들었다.

 

젱스의 작품은 박람회장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올해 10월에 엑스포가 끝난 뒤에도 그 자리에 영구적으로 남을 예정이라고 한다.

너무나도 짧은 여행을 하고 나니 한국 정원 문화에 대해서 좀 더 심도 깊은 연구와 감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책 한 권으로 끝내버릴 수 있는 과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답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그들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산악 경관과 그림 같이 섬세한 정원이 있는 한국을 다시 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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