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트(Ziggurat)_220419
*아래 모든 텍스트와 그림은 영문 위키피디아를 옮겨서 인용한 것이며, 해당 내용의 웹 주소는 아래와 같다.
지구라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었던 거대한 건축 유형이다. 층들이 계속 뒤로 물러앉으며 계단식 단을 이루는 복합체 형태다. 유명한 지구라트로는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Nasiriyah) 근방 ‘우르의 지구라트(Great Ziggurat of Ur)’, 이라크 바그다드 근처 ‘아칼쿠프의 지구라트(Ziggurat of Aqar Quf)’, 지금은 파괴된 바빌론의 에테메난키(Etemenanki) 유적, 이란 남서부 후제스탄의 초가잔빌(Chogha Zanbil), 이란 테헤란 남쪽의 시알크(Sialk) 등이 있다. 수메르 사람들은 신들이 지구라트 꼭대기 신전에 산다고 믿어서, 사제들과 크게 존경 받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사회는 신들이 신전에 기거하도록 음악과 수확물, 그리고 기도상을 제작하는 등 많은 것들을 바쳤다.
1. 역사
‘지구라트’라는 단어는 고대 아시리아어 ‘지쿠라툼(ziqqurratum, 높이나 정점을 뜻함)’에서 유래했다. ‘자카룸(zaqārum)’은 ‘높이 있다’는 뜻이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우르남무 왕(King Ur-Nammu)이 건설한 신수메르식 지구라트인데, 우르 제3왕조(BCE 2112-2004) 시대인 기원전 21세기경 왕이 난나(Nanna/Sîn, 달의 신)를 기리려고 세웠다.
2. 설명
고대 수메르인, 아카드인(Akkadians), 엘람인(Elamites), 에블라인(Eblaites), 바빌로니아인 들이 지역 종교를 위해서 지었다. 각 지구라트는 다른 건물들을 포함하는 신전 복합체의 일부였다. 지구라트의 전조는 기원전 제6천년기의 우바이드 시대(Ubaid period)부터 시작된 '높인 기단(raised platforms)'이다. 지구라트는 기단들(대개 타원이거나 직사각형이거나 정사각형)에서 시작됐다. 지구라트는 마스타바(mastaba)와 비슷한 구조물로 꼭대기가 평평했다. 햇볕에 말린 벽돌이 지구라트의 중심부를 이루고 바깥쪽은 불에 구운 벽돌 표면이었다. 각 단은 바로 아래 단보다 약간 작았다. 표 면은 흔히 다양한 색깔로 유약을 발랐고 점성술적으로 의미가 있었을 수도 있다. 왕들은 때로 이 유약을 바른 벽돌들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층수는 2층부터 7층까지 다양했다.
고고학자 해리엇 크로포드(Harriet Crawford)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지구라트 위에 신전이 있었다고 일반적으로 추정하지만, 이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헤로도토스(Herodotus)에게서 나온 것뿐이고 물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런 신전을 발견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남아있는 지구라트들도 침식 탓에 대개는 원래 높이의 일부로 줄어들었지만, 문헌상 증거들이 이 신전들의 목적에 대해서 사실들을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다. 지금 알고 있는 수준에서는 지구라트가 기단 위에 세운 초기 신전들에서 발전했고 작은 신전들이 최상층 위에 서 있었다는 주장을 일종의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로 채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
지구라트 한쪽 면에 있는 연속된 경사로나 토대부터 정상까지 난 나선형 경사로를 통해서 신전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들은 대중의 예배나 의식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을 신들의 거주지로 믿었고, 도시마다 고유한 수호신이 있었다. 사제들만 지구라트 또는 그 기단의 방들에 들어갈 수 있었고, 신을 돌보고 신의 요구를 처리하는 것이 사제의 책무였다. 사제는 수메르와 아시리아-바빌로니아 사회에서 세력이 매우 강한 구성원이었다.
가장 잘 보존된 지구라트 중 하나가 이란 서부의 ‘초가잔빌’이다. 이란 카샨(Kashan)의 ‘시알크 지구라트’는 가장 오래된 것들 중 하나로서 기원전 3천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라트 디자인은 그 위에 신전이 서 있는 단순한 기초부터, 계단식으로 된 여러 층들이 이어지고 꼭대기에 신전이 있는 수학과 건축의 경이로운 결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단순한 지구라트의 사례는 고대 수메르에서 지은 ‘우루크의 백색 신전(White Temple of Uruk)’이다. 지구라트 자체가 백색 신전을 세운 기단이다. 이 지구라트의 목적은 신전이 하늘과 더 가까이 있게 하고 계단을 통해 지상에서 그곳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이런 피라미드식 신전이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바빌론에 있었던 지구라트는 ‘에테메난키’로 알려졌는데, 수메르 말로 "하늘과 땅의 토대가 되는 집(House of the foundation of heaven and earth)"을 뜻한다.
에테메난키의 본래 조성 연대는 불분명하지만, 기원전 14세기에서 기원전 9세기 사이로 추정되며 문헌상 증거를 통해서 기원전 2천년기에 존재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불행히도 이 거대 건축의 기단조차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고고학 발견과 역사 기술(historical accounts, 記述)에 따르면 이 탑은 다양한 색을 칠한 일곱 층이며 꼭대기에 우아한 비례를 갖춘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은 층들의 윗부분과 어울리게 남색(indigo color)을 칠하고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전으로 향하는 계단들이 세 곳으로 알려졌는데, (측면에 달린) 이 계단들 중 두 곳은 지구라트 높이의 절반만 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3. 해석과 의미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지구라트 각각의 꼭대기에는 신전이 있다고 했지만, 이 신전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지구라트의 실용적 기능 중 하나는 매년 저지대를 침수시키고 때로는 1967년 범람처럼 수백 킬로미터를 물에 잠기게 하는 대홍수에서 사제들이 대피할 수 있는 높은 장소라는 점이었다. 지구라트의 또 다른 실용적 기능은 보안이었다. 계단 세 곳으로만 신전에 접근할 수 있어서 엘레우시스 밀교의식(Eleusinian mysteries, 역주: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위해 제물을 바쳤던 8일간의 의식) 같은 입회 의식(initiation rituals), 제수(sacrificial food, 祭需)의 조리, 희생동물 불태우기 등 지구라트 꼭대기 사당에서 벌이는 의식들을 사제 아닌 사람들이 엿보는 것을 소수의 경비병으로 막을 수 있었다. 각 지구라트는 안마당, 창고, 목욕탕, 주변으로 도시가 펼쳐진 거주 지역, 그리고 사람들이 기도하는 장소까지 포함하는 신전 단지(temple complex)의 일부였다.
4. 영향
현대 학자들은 바벨탑에 대한 성경 서술을 메소포타미아 지구라트의 대규모 건설 사업들, 특히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nezzar II: BCE 630-562, 역주: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제2대 왕,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왕과 주민을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아 둠)의 복원 사업을 묘사한 바벨탑 석비(Tower of Babel Stele, 石碑)를 고려하여 바빌론의 에테메난키 지구라트와 연결 짓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설계, 특히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의 계단식 설계(기원전 2600년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의 피라미드(Pyramid of Zoser at Saqqara)는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지구라트 형태는 1970년대 시작된 현대 건축과 브루탈리즘 건축(Brutalist architecture)에서 부활을 경험했다. ‘알자쿠라 빌딩(Al Zaqura Building)’은 바그다드에 위치한 정부 청사다. 이 건물은 이라크 총리의 집무실이다. 바그다드의 ‘바빌론 호텔(Babylon Hotel)’ 또한 지구라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쳇 홀리필드 연방 빌딩(Chet Holifield Federal Building)’은 형태 때문에 속칭 ‘지구라트’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캘리포니아주 라구나니구엘(Laguna Niguel)에 있는 미 정부 청사이며, 1968년부터 1971년 사이에 지었다. 그 밖의 사례로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새크라멘토에 있는 ‘지구라트’와 런던의 ‘SIS 빌딩’ 등이 있다.